✍️ 치앙마이 한 달, 푸릇한 공기 속에서 느리게 흐르다

2025. 11. 22. 17:09슬기로운 은퇴생활 A to Z/한달살기 여행의 기록

솔직히 말하면, 이 여행은 제 인생에서 가장 많이 걸은 한 달이었습니다. 일일 평균 걸음수가 무려 2만 보라니, 이건 거의 일상을 트레킹처럼 살았다는 얘기죠. 하지만 이상하게도 지치지 않았어요. 아마 치앙마이의 그 푸릇한 공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저는 이 느림의 도시에서 매일 2만 보씩 걸으며 제 삶의 속도를 다시 맞췄습니다.

 

1월 31일, 드디어 인천을 떠났습니다. 왕복 항공권은 1인당 388,700원 음... 생각보다 저렴했죠.

2월 1일 새벽, 수완나폼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치앙마이로 바로 가는 게 아니라, 일단 방콕에서 며칠 놀다가 기차를 타고 올라가기로 했어요. 수완나폼에서 공항철도를 타고 파야타이로 이동하는데, 이미 이 복잡한 대중교통의 냄새가 '아, 내가 태국에 왔구나' 실감케 했죠.

방콕에 도착하자마자 몸을 쉬게 둘 시간이 없었습니다. 룸피니 공원에서 잠깐 푸릇한 기운을 느끼고는, 바로 황금 사원과 왓 아룬(새벽 사원)으로 향했습니다. 왕궁 주변의 그 웅장함이란... 정말이지 압도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엄청난 인파 속에서 땀을 흘리며 돌아다니는 건 피로가 누적되는 일이었죠. 아, 글쎄, 첫날부터 벌써 2만 보는 거뜬히 넘겼을 겁니다.

2월 2일, 이날도 아침부터 엄청나게 걸었습니다. 리바 아룬 호텔 근처에서 출발해서 왓 포, 왓 프라깨우(에메랄드 사원)를 돌고, 이어서 왕궁까지 싹 훑어봤어요. 관광지를 훑고 지나가는 '찍고 오는' 여행이 아니라, 정말 하나하나 눈에 담으려고 노력했죠.

오후에는 정신없이 짜뚜짝 시장에 들렀습니다. 정말 그 복잡함 속에서 길을 잃을 뻔했어요. 흥정도 해보고, 엉뚱한 물건도 사보고... 시장은 언제나 그 도시의 맨얼굴을 보여주잖아요? 그리고는 방 슈 기차역까지 이동했습니다.

밤에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야간 침대 기차를 타고 치앙마이로 향했습니다. 낡았지만 나름의 낭만이 있는 침대칸에서 흔들리는 기차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했습니다. 

 

2월 3일 아침, 치앙마이 기차역에 도착했습니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느낀 공기는 방콕과는 또 달랐어요. 훨씬 푸릇하고 신선했죠. 저는 도보 이동을 선택했습니다. 기차역에서 올드타운까지 걸어갔죠. 아마 이날도 2만 보를 채우고 시작했을 겁니다.

배가 고파서 올드타운 근처 블루 누들에서 점심을 먹고, 저희 숙소가 있는 님만해민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저희의 한 달 숙소였던 님만해민 콘도미니엄! 숙소비 28박에 495,216원. 이 정도면 한 달 살기 치고 정말 저렴하게 잘 구했다고 생각했어요.

2월 4일은 운 좋게 농부악 공원 주변에서 치앙마이 꽃 퍼레이드 축제를 만났습니다. 알록달록한 꽃마차들을 보면서, '아, 내가 진짜 타이밍 좋게 왔구나!' 싶었죠. 왓 프라싱까지 걸어갔다가, 밤에는 소문으로만 듣던 노스게이트 재즈 펍에 갔습니다. 라이브 재즈 음악을 들으며 맥주 한 잔을 마시는데... 그때의 그 자유로운 분위기란!

2월 5일, 이날은 좀 힘든 미션이었어요. 마야 쇼핑몰 주변에서 썽태우를 타고 도이수텝으로 향했죠. 치앙마이대학교 저수지를 지나 산을 오르는데, 공기가 점점 맑아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도이수텝 사원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치앙마이 전경은 정말이지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저녁에는 다시 내려와 치앙마이대학교 야시장에 들렀습니다. 학생들이 많아서인지 활기가 넘쳤고, 저렴하고 맛있는 길거리 음식이 가득했어요.

2월 6일, 본격적인 로컬 라이프 체험! 올드 시티를 지나 므앙마이 시장와로롯 시장을 걷는 건 또 다른 재미였습니다. 관광객이 적고 현지인들로 가득한 시장은 정말 그 도시의 숨겨진 매력진짜 생활을 보여주거든요.

특히 므앙마이 시장은 치앙마이의 새벽을 여는 곳이죠. 새벽부터 싱싱한 농산물과 과일, 채소가 쌓여있는데 그 활기가 엄청납니다. 저는 이곳에서 드디어 용기를 내어 두리안을 먹었습니다. 평소에는 그 특유의 향 때문에 망설였는데, 음... 이곳에서 파는 두리안은 정말 달랐어요.

한 조각을 사서 입에 넣는데, 정말이지 입안 가득 크리미한 달콤함이 퍼지면서, 이게 왜 '과일의 왕'인지 알겠더군요. 그 냄새는 온데간데없고, 마치 아주 농축된 고급 커스터드 크림을 먹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자리에서 한 조각 더 사 먹을 뻔했어요. 그때부터 저는 두리안의 매력에 푹 빠지기 시작했죠.

두리안으로 배를 채우고, 이어서 와로롯 시장까지 걸어갔습니다. 와로롯 시장은 건과일이나 기념품 등을 구경하기 좋았죠. 오후에는 센트라 리버사이드 치앙마이 호텔 근처에서 101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고, 저녁에는 웬일로 태국 음식이 아닌 한국관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먹었습니다.

2월 7일, 반캉왓과 왓 우몽, 그리고 No. 39 카페를 방문했습니다. 반캉왓은 아티스트들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 같았고, 왓 우몽은 숲 속에 파묻힌 듯한 고요한 사원이었죠. No. 39 카페는 연못이 있는 그림 같은 풍경이었습니다. 이런 곳들을 모두 걸어서 다녔으니, 2만 보 미션은 자동으로 달성되었습니다.

2월 9일, 다시 산으로 향했습니다. 도이뿌이 몽족 마을푸핑 궁전! 몽족 마을은 소박하고 아름다웠고, 푸핑 궁전의 정원은 정말 화려했습니다. 내려와서는 빅빅샤브에서 샤브샤브를 먹고, 아보카도 아이스크림으로 입가심을 했습니다. 정말, 정말이지 완벽한 하루였어요.

2월 11일과 12일, 주말이 다가오자 본격적인 시장 순례가 시작되었습니다. 찡짜이 마켓에서는 빈티지 물건들을 구경하고, 타패 게이트 앞에서 이발도 했습니다(여행 중 이발, 해보니 꼭 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밤에는 토요 마켓과 일요 마켓이 열리는 선데이 마켓을 걸었습니다. 바파오 플리마켓(코코넛 마켓), 참차 마켓까지... 

2월 13일, 치앙마이 버스터미널 3에서 치앙라이 버스터미널 1로 이동했습니다. 치앙마이에서 잠시 떠나는거였죠. 산 호텔 치앙라이에 짐을 풀고 저녁에는 치앙라이 나이트 바자를 구경했습니다. 치앙라이는 치앙마이보다 훨씬 조용하고 소박한 느낌이었어요.

2월 14일, 이날은 색깔 여행을 했습니다. 백색 사원(왓 롱 쿤)의 화려함, 청색 사원(왓 롱 쓰어 뗀)의 강렬함, 그리고 블랙 하우스(반 담)의 기괴하고 웅장한 예술 세계! 이 세 곳은 정말이지 사진으로 담을 수 없는 압도적인 장관을 보여주었습니다. 아... 그때의 그 충격이란.

백색 사원은 천국 같았고, 블랙 하우스는 지옥 같았다고 해야 할까요? 치앙라이는 치앙마이와는 완전히 다른, 강렬한 색채의 감동을 주었습니다. 다시 치앙마이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저는 이 짧은 여행이 제 치앙마이 한 달 살기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치앙마이로 돌아온 후, 제 한 달 살기는 더욱 루틴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2월 15일: 갑자기 한식이 당겨 테이스티 24에서 떡볶이와 김밥을 먹었습니다. (역시 한식은 못 참지!) 싼티탐 지역을 돌아다니고, 크렁 매카 주변을 걸었습니다.

2월 16일: 갤러리 씨스케이프에서 예술 작품을 감상하고, 스무디 드링크 핼시에서 망고 요거트를 마셨습니다. 점심은 현지 맛집 까이양 청더이에서 치킨 바비큐! 정말이지 이곳 음식은 제 입맛에 찰떡이었습니다.

2월 20일: 와로롯 시장을 또다시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싼깜팽 온천에서 발을 담그며 노곤함을 풀었죠. 저녁에는 현지인 맛집 떵뗌또에서 북부 태국 음식을 맛봤는데, 와... 제가 해보니, 로컬 맛집을 찾아다니는 건 한 달 살기의 가장 큰 기쁨입니다.

2월 21일: 아카 아마 커피에서 향긋한 커피를 마시고, 나이트 바자에서 기념품을 구경했습니다. 이쯤 되면 제가 치앙마이에 사는 사람인지, 여행 온 사람인지 헷갈리기 시작했죠.

2월 18일: 로열 파크 랏차프룩의 드넓은 정원을 걸었습니다. 넓은 정원을 걷는 동안에도 2만 보는 거뜬했습니다.

2월 19일, 먼 쨈으로 향했습니다. 치앙마이 시내와는 완전히 다른 고산 지대의 시원함과 아름다운 뷰! 음...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 이렇게 도시와 자연을 오가야 여행이 질리지 않고 지속 가능한 것 같아요.

2월 22일, 매캄퐁이라는 산속 마을을 다녀왔습니다. 아기자기하고 조용한 마을에서 힐링을 얻었죠.

2월 23일, 치앙마이 시티 아트 컬처 센터에서 태국 북부의 역사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라탄 거리를 걸으며 예쁜 라탄 제품들을 구경했죠.

2월 24일, 드디어 이번 여행의 가장 큰 하이라이트였습니다. 도이인타논 트레킹! '히말라야의 끝자락'이라고 불리는 이곳을 오르면서, 저는 정말 제가 산을 정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정상에서 느꼈던 그 성취감, 그리고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던 그때의 감각! 이날은 정말 2만 보가 아니라 3만 보는 걸었을 겁니다.

트레킹 후에는 벼룩시장, 랑머 야시장, 카나모르 마켓 등 마지막 마켓들을 훑었습니다. 치앙마이의 모든 것을 눈에 담으려고 노력했죠.

 

2월 28일, 치앙마이에서의 정든 숙소를 뒤로하고 다시 기차를 타고 방콕으로 이동했습니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야간 기차였죠.

3월 1일 새벽, 방콕으로 바로 가지 않고 아유타야에서 하차했습니다. 저는 아유타야의 고대 유적을 보며 잠시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다시 방콕으로 들어와 보트 택시를 타고 카오산 로드를 지나, 현대적인 아이콘 시암까지! 방콕은 치앙마이와는 또 다른, 정신없는 활력으로 저를 맞이했습니다.

3월 2일, 차이나타운딸랏 노이 스트리트를 걸었습니다. 방콕의 구도심과 신도심의 대비를 온몸으로 느끼며, 이번 여행의 마지막 2만 보 미션을 수행했죠.

3월 3일, 메가 방나 쇼핑몰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고 수완나폼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31일 동안 1인당 1일 61,228원의 경비를 사용했습니다.

이 경비는 경험에 투자된 돈이었습니다. 매일 2만 보씩 걸으며 도시의 구석구석을 탐험했고, 저만의 속도로 가장 행복한 한 달을 보냈습니다.

치앙마이에서의 그 푸릇한 공기와 느린 리듬, 한국에서도 잊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 글쎄, 노력해야죠... 곧 또 다른 도시로 떠날 날을 기다리면서요!